책 소개 - <성폭력에 맞서다>
작성자 Admin 날짜 2010-01-09 조회수 834
성폭력에 맞서다 (사례·담론·전망)
이미경 외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01.20

<책소개>
'성폭력 피해를 입은 건 당신 탓이 아니야.
그러나 상황 자체를 발생시키지 않을 힘은 당신에게 있어.'
- 성폭력 상담 활동가와 여성학자가 일군 성폭력 해방 프로젝트 -

한밤에 뒤에서 따라오는 발소리에 발걸음을 서두르는 여성들의 일상적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엄존하는 성폭력 위협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반(反)성폭력 운동 활동가는 상담과 예방 교육에, 여성주의 학자는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개발하는 데 매진해왔다.
2008년 봄,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전국의 반성폭력 운동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심화교육 강의가 있었다. 이는 성폭력 상황에 처한 피해 여성을 위로하고, 민형사상 후속 조치를 알려주는 등 사태를 ‘수습하는’ 데 그친 기존 상담의 틀에서 벗어나, 성폭력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상담활동상을 그려내 활동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 강의에서 교육생이 던진 질문과 강사의 답변을 본문에 함께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현장 활동가가 기술한 사례와 문제의식, 연구자가 제시하는 담론이 함께 만나 새롭게 그려본 전망을 담은 것이다.

1994년에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야 성폭력 관련 정책이 도입되었을 정도로, 1990년대 초만 해도 성폭력이라는 개념조차 생경했다. 그 뒤 여성주의 활동단체, 특히 성폭력 및 가정폭력 사안에 대응하는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하면서 척박했던 여성운동 토양이 조금씩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매순간 삶을 위협받는 여성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지난 18년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를 상담한 횟수는 6만 2,000여 건이다. 1991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최초로 한국 사회의 성폭력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2.2퍼센트 신고율’을 언급했다. 강간 피해자 중 2.2퍼센트만 신고한다는 것인데, 세월이 흘렀음을 감안하더라도 성폭력 위협에 시달리거나 실제 피해를 입은 여성의 수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피해는 엄청난데, 이를 감당할 활동가와 단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사후 조치’가 아니라 피해 상황의 ‘사전 차단’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이러한 질곡을 벗어날 대안을 명쾌하게 제시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책은 2부 6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상담 현장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폭력 피해 사례를 소개하고, 피해 상황 자체를 성립하지 않게 할 새로운 상담상을 제안한다. 제1강은 반성폭력 운동사에 전기(轉機)가 된 사건과 뒷이야기, 상담소 활동상을 소개 및 성찰하며 현장 경험의 이론화와 실천이 함께 공존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제2강은 현재 성폭력 상담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작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는 다가가지 못하는 ‘가부장제 타파’ 같은 거대담론의 무력함을 극복하고, 상황이 터졌을 때 가해자, 경찰, 법원을 상대로 취해야 할 ‘응급처치요령’을 알려주는 데 그치는 상담의 한계를 넘어 ‘몸’과 그 안의 ‘욕망’을 읽어내는 방법을 통해 상황을 전복할 가능성을 모색한다. 제2강의 실습 가이드 격인 제3강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소개한다. 필자는 호신무기를 사용하려면 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듯, 여성도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타자화된 시선에 길들여지고 이를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은 결과 ‘수동적인 몸’을 갖게 된 여성의 감춰진 힘을 이끌어내는 법을 익힌다.
제2부는 주로 여성학자들이 법, 시민권, 인식론 차원에서 바라보는 성폭력 문제를 다루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담론을 제시한다. 제4강은 형법 제297조 강간죄 조항을 다룬다. 강간죄가 ‘살인, 방화’와 함께 강력범죄로 분류되기에 범행 대상을 폭넓게해석하지 못하는 법제적 한계를 기술하고, 피해자가 싫다고 했더라도 ‘피해자가 항거하기 곤란한 정도’만을 성폭력 상황으로 간주하는 법관의 인식을 비판한다. 제5강은 먼저 시민권 개념과 역사를 살핀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부터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시민 및 시민권의 변천사와 현주소를 살핀다. 시민권을 쟁취하려는 여성의 투쟁, 즉 여성운동 역사를 서술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 시민에서 여성으로의 전환, 차이와 보편성 등에 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제6강은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 '추격자', '사라진 여성들' 같은 영화를 통해 여성주의 인식론, 그중에서도 합리성의 문제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정체성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성폭력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에 착안한 ‘연대의 정치’를 제안한다.

[인터파크 도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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