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소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소아정신과 의사들의 입장
작성자 Admin 날짜 2010-08-03 조회수 1208
일련의 소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소아정신과 의사들의 입장

1. 아동 성폭력 사건, 알려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2008년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 2009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 언론에 발표되는 여러 성폭력 사건까지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일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동 성폭력 사건들. 최근 들어 갑자기 증가한 것일까?
미국의 경우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 중 10%만이 타인에게 인지가 된다는 보고가 있다. 성적인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그 비율이 1%에 미치지 못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결국 최근의 빈번한 보도의 원인이 아동 성폭력의 실제적 빈도의 증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사회나 어른들이 이전에는 관심을 덜 가졌던 아이들의 인권과 정신적인 고통에 관심이 늘어나면서 공론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공론화의 과정을 통해 아동의 인권은 보다 나아지고 성폭력은 줄어들 수 있다.

2. 아동 성폭력, 과장된 반응은 금물이다.

만에 하나 성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아동의 주변 사람들은 냉정함을 유지하여야 한다. 심정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차적인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부모의 안정된 태도는 필수적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가까운 가족들의 태도에 의해 사건의 의미를 형성한다.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폭력을 당한 아이의 잘못을 탓하거나 ‘쉬쉬’ 하면서 아이의 입을 막으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의 태도는 아이에게 깊은 수치심과 자신은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최근에는 오히려 부모가 지나치게 흥분하고 불안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일이 종종 있다. 아직 정확한 상황 판단도 안 된 상태에서 부모가 적개심 등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에게 다그쳐 묻기도 한다. 10세 이하의 아동은 성적인 의미를 명확히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심각한 반응을 보일 경우 아이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후유증은 더 커질 수 있다.

현재 전국 각지에 설치되어 있는 해바라기센터에서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처방법을 안내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검사와 치료까지 연계하고 있다.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서 당황하는 부모라면 우선 해바라기센터와 연락하여 대응방법을 상의하는 것이 좋다. 심리적으로 부모가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를 안심시키고,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가 지켜줄 수 있다는 말을 통해 아이를 지지하면서 차분하게 대응하여야 한다.

3. 아동 성폭력에 대한 대처, 아동의 안전이 우선이다.

최근 성폭력을 다루는 언론의 입장을 보면 사건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다루어서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는 정보까지 제공하고 있다. 위치가 어디인지 짐작이 가는데 그 학교의 한 여자아이가 그날 결석을 하였다면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네가 당한 것 아니냐는 전화를 받게 된다. 이는 아직은 사회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성범죄 피해 아동과 가족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므로 더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 성범죄가 발생한 이후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아동의 인적 사항 조회를 위해 학교를 공개적으로 방문하는 것, 집에서 성폭력을 당한 아동의 경우 집이 범죄현장으로 노란 줄이 쳐진 채 공개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는 성폭력 사건 이후에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아동과 가족들에게 큰 짐이 된다.
아동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이다. 경찰 조사에서도 성폭력은 법률적인 부분뿐 아니라,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과 같은 의료적인 부분이 공존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피해를 당한 아이가 내 자식이었더라면 어떻게 하였겠나 하는 생각으로 아이의 안전을 가장 우선시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사건의 발생 여부보다 사건을 인지하고 어떻게 처리했느냐?’로 이동하여야 한다. 범죄자에 대한 비난보다는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고 그 후 처리 과정을 돌아보며 제도를 개선시키는 방향이 되어야 아이들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다.
언론에서도 선정적인 보도를 자제하여야 하며 언론에 나온 정보가 아이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소아정신과 진료실에서 만난 한 성폭력 피해 아동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 ‘자신도 언론에서 보도된 그 아이처럼 이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였다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피해 아동과 부모는 연일 보도 되는 성폭력 기사 때문에 예전의 피해 사실이 자꾸 떠올라서 잠도 설치고 자꾸 헛것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다. 성폭력은 적극적으로 발견하여 반드시 처벌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피해자의 상처를 덧내지 않도록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4. 우리 아이들은 좀 더 보호받아야 한다.

아동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그 증거가 최근에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무엇보다 12세 이하 아동을 장시간 혼자 두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는 일정 연령 이하의 아동을 혼자 두는 것만으로 아동학대로 관련 기관에 신고가 되며 부모가 조사를 받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부터 보건복지 부에서 ‘아이를 혼자 두지 마세요.’ 라는 공익 광고를 시작한 것은 나라의 국격을 생각할 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캠페인이 현실에 맞지 않다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여러 사건에서 보이듯 모르는 사람에게 일회성으로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은 저소득층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로 발생하고 있다.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보호 감독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아동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또한 맞벌이 가정 밀집 지역에서는 아이들끼리의 성적 학대나 폭력도 종종 발생한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에 무방비 적으로 노출되고 그렇게 접한 것을 서로에게나 다른 아이들에게 행동화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현재의 아동 성폭력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희생자들의 눈물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5. 부모 자녀의 좋은 관계가 성폭력 피해 예방에도 중요하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수록 가정 내 성교육에 좀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성폭력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아이들이 성적인 문제에 파편적으로 노출될 수 있고 그러한 불충분한 노출이 오도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의 가장 좋은 성교육은 발달 연령에 맞추어 부모가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성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한다. 이 경우 부모는 단순히 성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진실은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성교육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적 존재이다. 부모가 먼저 건강한 성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아동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편안하게 습득하게 된다. 성이란 것은 인간관계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평소 부모-자녀 관계가 중요하며, 튼튼하고 친한 부모-자녀 관계가 부적절한 성적 행동을 차단할 수 있는 예방책이다. 또한 부모-자녀 관계가 튼튼하면 필요할 때 사소한 행동변화를 부모가 파악할 수 있어서 유리하다. 부모 자녀 관계가 좋지 않으면 아동이 성폭력을 당하더라도 부모에게 도움을 조기에 청하지 않아 조기 개입이 어려워진다.

아동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는 이제 시작이다. 적절한 대처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의 인권은 보다 나아질 것이고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다. “아이는 혼자 두지 않는다. 아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함부로 만지거나 안거나 뽀뽀할 수 없다. 아이의 이야기는 일단 믿는다. 아이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용하는 경우는 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큰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분명해져야 아동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 만약 성폭력을 당한 아이가 있다면 우리 모두는 이렇게 위로해야 한다. “넌 참 괜찮은 아이란다. 그 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아도 될 정도로 소중한 존재란다. 네 잘못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2010. 7. 12.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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